한반도 북부 채집을 시도한 외국인 6명과 지명 정리: Imai, Mills, Furumi, Nomura, Saito, Okuyama
A bibliography of six foreign plant collectors (Imai, Mills, Furumi, Nomura, Saito, and Okuyama) in North Korea
Article information
Abstract
서울대학교 수우표본관에서 완성한 KPF(Korean Peninsula Flora Database) 데이터베이스에서는 1850년부터 1945년까지 한반도에서 채집된 65,000개의 관속식물의 기록물을 관리하고 있다. 이 중 북한에서 채집된 기록은 33,000개인데 이 중 13%에 해당되는 4,287개가 1909년부터 1942년에 걸쳐 5명의 일본인(노무라, 오쿠야마, 후루미, 이마이, 사이토)과 1명의 미국인(밀즈)에 의해 채집되었다. 코마로프(Komarov, V.L), 나카이(Nakai, T) 이후 3번째로 많은 북한에서 채집된 표본이다. 이런 채집과 관련된 보고서는 지명사전으로 기존에 일부 발표하였지만, 본 논문에서는 보다 더 자세한 일정과 채집물에 대해 기록하였다. 사이토가 가장 많은 1,730개 표본을 채집하였고 밀즈, 노무라, 오쿠야마, 후루미, 이마이 순서로 1,067, 532, 510, 368, 370개의 표본을 채집하였다.
Trans Abstract
Korean Peninsula Flora Database (KPF database), developed by T.B. Lee Herbarium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comprises ca. 65,000 accessions of vascular plants collected from Korean peninsula from 1850 to 1945. Among these, material from North Korea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is represented with ca. 33,000 accessions. The largest part of this material [ca. 4287 accessions (13%) from North Korea] originates from five Japanese and one American collectors, such as Imai, Hanjiro, Mills, Ralph Garfield, Furumi, Masatomi, Nomura, Naohiko, Saito, Tatsumoto, and Okuyama, Shunki from 1909 to 1942. These data are the third largest holding (13%) of North Korean collections after Komarov, V.L and Nakai, T. A part of scientific report about the results of these expeditions had been published before, but the present publication set it sights on giving a first overview of the itineraries and the materials collected by five collectors in North Korea. Among these, Saito has by far the largest collection with 1,730 specimens, followed by five collectors in order with 1,067, 532, 510, 368 and 370 accessions by Mills, Nomura, Okuyama, Furumi, and Imai respectively.
생물다양성정보학(Biodiversity informatics)은 채집된 표본 자료나 종발생 자료, 문헌, 사진 기록 등을 1차 종발생자료(primary occurrence data)로 정보화하여 다양성 보전에 활용하고 있다(Pollefeys et al., 2004; Museum of Vertebrate Zoology and Geospatial Innovation Facility, 2008; Haripersaud et al., 2010; Tang et al., 2010; Feeley and Silman; GBIF, 2011).
생물다양성 정보의 활용도는 종발생자료에 위치정보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더 확장된다. 위치정보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지명정보를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고, 과거 지명의 불일치, 불확실함, 혼란 등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언어로 표기된 지명을 모아 정리하고 좌표를 입력하는 작업으로 지명과 관련된 통일된 ‘Gazetteer’(지명사전)라 지칭한다. 하버드대학에서 중국 운남과 티벳 지역의 과거 지명에 대한 정리를 DB화해서 제시하고 있으며(Kelly, 2006; Boufford et al., 2013), 유럽이나 남미에서도 일부 산발적으로 이런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1945년 이전 한반도 내에서 채집된 식물 표본은 대부분 일본에 소장되어 있어 표본 레이블에 대부분 한자로 기록되어 있어, 어느 정도 지역에 대한 정보를 유추해서 자료 활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문헌에는 한자 지명을 일본식 발음으로 표기하여 문헌과 표본에 대한 정보의 상호보완이 되지 않아 이용 빈도가 낮다(Chang et al., 2015).
1947년과 1952년 두 차례의 북한 행정개편은 과거 사용한 많은 지명들이 소멸되어, 과거와 현재의 지명 정보의 괴리가 점차 심화되고 있다(Kim et al., 2006). 외국에서는 이런 이유로 여전히 문헌에 기록된 과거 일본식 발음의 북한 지명을 활용하고 있으며, 정확한 위치참조를 위해서 국내 전문가에게 의뢰하기도 하지만 외국처럼 발달된 지리참조연산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아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데 한계가 있다.
국내 채집지명과 채집자들의 채집행적 정리는 과거 발표를 통해 V. Komarov (Chang and Chang, 2003; Chang and Choi, 2004), U. Faurie (Chang et al,, 2004), T. Nakai (Kim et al., 2006), T. Uchiyama (Kim et al., 2007), T. Ishidoya (Chang and Chang, 2010), E. H. Wilson (Kim et al., 2010), T. Mori (Kim et al., 2012), J. Ohwi, S. Kitamura와 G. Koidzumi (Chang et al., 2013)등의 채집지명을 정리한 바 있다. 이런 채집행적 정리는 지명정리의 가장 초기 단계의 작업으로써 기록된 채집 날짜와 지명 등의 흔하게 발견되는 일차적인 오류를 잡아내고 지명 정리하는데 핵심이 된다.
본 연구는 주로 과거 북한 지역에서 채집을 시도한 지역 별 대표가 되는 6명에 대한 자료로 주로 1910년대 채집자 3명, 1930년대 2명, 1940년대 1명에 대한 자료이다. 기존 이런 자료는 이미 지명사전으로 일부 채집자별 기록은 정리되었으나(Chang et al., 2015), 본 연구에서는 보다 자세하게 해당 채집자의 채집날짜와 표본에 대한 기록을 정리하였다.
Imai, Hanjiro (今井半次郞)는 하버드대학 데이터베이스 (Harvard University Herbaria & Libraries, 2015)에서는 첫 채집은 1920년, 마지막 채집은 1929년으로 기록하지만 실제 채집은 1909년부터 시도하였다. 평양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는 지질 분야에 今井半次郞(1884−1938)로 기록되는 인물과 동일 인물로 추정되며 이 기록이 맞을시, 당시 25-28세 사이로 추정된다. 평안남도와 평안북도 지역을 주로 채집하였다.
Mills, Ralph Garfield (1884−1944)는 1884년 미국 일리노리 링컨에서 출생한 의사로서, 1908년−1918년까지 약 10년 간 한국에서 그의 나이 20−30대에 선교 활동을 하였다(Yeo, 2004). 세브란스병원의 연구부에서 보건 분야 연구를 하였지만, 초기에는 현재의 자강도(당시 평안북도) 강계에서 선교 및 의사 생활을 하면서 약 3년 간(1909년−1911년) 채집활동을 하였다. 1918년에 한국을 떠나 6년간 북경에 머물다가, 1924년에 미국으로 귀국했다. 북경에 머물던 시기인 1921년과 1922년 여름에 두 차례 황해도 구미포와 몽금포에서 채집 활동한 기록이 확인된다. 60세인 1944년에 미국 일리노이에서 사망하였다.
Furumi, Masatomi (古海正福)은 1888년생으로 制松江高校(현재 島根県 島根大學)의 식물학 교수를 지냈으며 42세인 1930년에 사망하였다. 주로 자강도-양강도 지역 채집을 시도하였다.
Nomura, Naohiko (野村直彦)은 1926−1935년에 함경남도 함흥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지냈으며, 이후 1937−1939년 3년 간 함경남도 농사시험장에서 기수로, 1940−1941년에는 전라북도 농사시험장 기수로 활동한 기록이 나오지만 출생과 사망에 대한 정보는 존재하지 않는다. 주로 함경남도 함흥 주변의 채집을 시도하였다.
Saito, Tatsumoto (斉藤龍本)은 1889년생으로 큐슈(Kyushu), 구마모토(Kumamoto) 출신으로 1913년에 조선에 들어와 중간에 잠시 취업을 하였지만, 1935년까지 함경북도 나남에서 약국을 운영하였다. 이후 약 10년 간 임업과 과학박물관에서 일을 하다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는 구마모토로 돌아가 58년까지 대학과 제약회사에 근무하였다. 주로 한반도에서 함경남북도와 지금의 양강도 지역을 주로 채집하였다. 1961년 72세에 사망하였다(Kitamura, 1977).
Okuyama, Shunki (Syunki) (奧山春李) (1909−1998)는 일부 도감 집필을 한 기록이 나오지만[原色日本野外植物図譜, 茶花植物図鑑, Terasaki’s Illustrated Flora of Japan] 일본 자연사박물관에서 활동한 이외에는 자세한 이력은 알려져 있지 않다. 31세인 1940년 8월에 약 10일간 주로 강원도 금강산과 함경남도 남쪽 채집을 시도하였다.
본 연구는 1910년에서 1945년까지 한반도 채집을 시도한 6명의 채집 행적을 종합적으로 정리하여, 추후 북한에 분포하는 식물 채집 기록의 일차종발생자료의 디지털화에 활용하고자 시도하였다.
재료 및 방법
1984년도에 이우철 교수가 기록한 경도대학 표본관 소재 한반도 채집표본 카드정보(이우철 카드)와 발표 연구 논문(Nakai, 1912)에 언급된 채집 기록에 소장된 자료를 직접 조사하여 정리하였다. 영국 Oxford 대학에서 개발한 브라암스(Botanical Research And Herbarium Management System; BRAHMS, 2015)에 입력해서 분석하였다. 지명에 대한 정리 부분과 문헌 출처에 대해서는 기존 연구 결과(Chang et al., 2015)을 참고하였다.
입력은 문헌에 언급된 채집지명, 출처 등을 정리하였다. 표본에 기재되어 있는 한자지명과 이들이 발표한 문헌에 기재되어 있는 로마자화 된 지명을 입력하여 정리하였다. 채집지 위치는 GeoNames (http://www.geonames.org/1835841/southkorea.html; http://www.geonames.org/1873107/north-korea.html)에서 확인하고, 구글맵(google map; maps.google.co.kr/)을 이용하거나 지리참조연산을 통하여 좌표화하였다(Chang et al., 2015). 북한의 경우는 1945년 이후 많은 행정지명, 특히 도와 군 이름이 급격히 변화하여 1945년 8월 15일을 기준으로 작성된 ‘한국지명사전(Sohn, 1974)’을 기준으로 하였고, 남한은 2013년 7월 현재 지명을 기재하였다. 기재된 지명 확인을 위해 활용된 지도는 지리부도 (Park et al., 2002)와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제공하는 대한민국전도(NGII, 2009)이며 한국학자료포털의 고지명용례(The Academy of Korean Stuydies, 2009)와 ‘북한지역정보넷’ [http://www.cybernk.net/]을 참고하였다. 분포도는 DIVA-GIS (Hijimans, 2011)을 이용하여 그렸다.
결과 및 고찰
서울대학교 수우표본관에서 관리하는 한반도 데이터베이스(Korean Peninsula Flora database (KPF))에 정리된 전체 숫자 약 65,000개 중 북한에서 채집된 표본이나 문헌 기록 숫자는 약 절반인 33,000개이며(50.4%), 본 연구에서 분석된 6명의 기록은 북한 채집품 중 13%(4,287개)를 차지한다. 한반도 채집중 개인 채집품 중에는 Komarov (7,169개), Nakai (6,777개), Ohwi (3,461개) 등의 다량의 채집기록이 있지만 전체 숫자로는 6명 채집 전체가 3번째 많은 채집품 숫자가 된다.
아래 채집자는 주요 채집의 연도 기록을 근간으로 순서대로 정리하였고 문헌에 나온 지명은 Table 1에 제시하였다. 문헌에 나온 출처는 기존 연구 발표 책자에 정리하여 이미 발표하였다(Chang et al., 2015).
1. Imai Hanjiro (今井半次郞): 1909년부터 1912년까지 4년 동안 평안남북도를 중심으로 채집을 시도하였는데, 주로 5−8월에 채집 표본이 집중된다. 도쿄대학 표본관(TI)에는 590개 표본이 소장되어 있으며, 370개 표본이 평양에서 채집되어 전체의 63%를 차지한다. 주로 1912년 채집인 평안북도 영변군과 벽동군 및 자강도 초산 채집품은 141개로 24%가 된다. 이 중 35개가 Nakai에 의해서 기준표본으로 인용하였다. 아래 기록은 Chang et al. (2015)에 기록된 내용을 재정리하였다(Appendix 1).
[1909년]
평양 시내를 중심으로 대동강변과 모란봉(牡丹臺), 송라산, 보통강변에서 6월 22일부터 10월 10일까지 채집한 기록이 있다. 100개 채집품이 남아 있다.
[1910년]
4월부터 평양의 보통강변, 모단대, 을밀대, 그리고 진남포 비발도를 중심으로 채집을 하였다. 104개 채집품이 있다.
[1911년]
5월−10월 사이 평양, 용악산에서의 채집기록이 있다. 8월에는 평안남도 개천과 황해도 해주, 황주에서의 채집기록이 극히 일부 남아 있다. 127개 채집품이 있다.
[1912년]
5월 평양과 대성산에서 채집된 표본기록이 있다. 6월 말부터 용강, 강서, 남포, 개천, 철산에서 채집하였고, 7월말부터 한 달 간, 평안북도 영변, 8월 초에는 평안북도 운산-초산-고산령-벽동-창성-삭주를 거쳐 의주까지 채집하였다. 9월에는 다시 평양에서의 채집 기록이 있다. 258개 채집품이 남아 있다.
2. Mills, Ralph Garfield: 1909년부터 1914년까지 5년간 한반도의 채집을 시도하였으며, 이후 1921−1922년 황해남도 채집 기록이 있다. 한반도에서 채집한 표본 수는 약 15,000개라 알려져 있지만(Yeo, 2004), 현재 동경대학에 소장된 표본은 1,067개만 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일부 北京 Academia Sinica (PE)에 소장되어 있다(Chang et al., 2015).
자강군 강계군에서 355건, 황해남도 용연군에서의 333건의 표본이 남아 있다. 70% 표본이 대부분 강계나, 황해도 몽금포, 구미포(소래) 등이며 극히 일부가 평안북도의 안주, 희천, 삭주, 창성, 위언, 박천 지역 등의 채집 기록이 있다. 1911년 이후(1912−1914년) 채집품 중 서울과 부산 채집품이 168개 정도 남아 있다.
채집품은 강계를 비롯해서 당시 Nakai는 그의 9개 정도의 서울, 안주, 소래에서 채집된 표본을 기준표본으로 사용하였다. Nakai(1912)는 약 250개의 표본을 가지고 Plantae Millsianae Koreanae라는 제목으로 종목록을 제시하였는데 이는 1911년 인쇄한 Flora Koreana II 에 누락된 표본에 대한 조사가 된다. 데이터베이스 자료 분석을 보면 Mills은 Faurie/Taquet과 유사하게 채집된 표본별로 정리 후에 표본번호를 부여하는 방식을 선택해서 채집날짜에 대한 오류가 상당히 많이 확인된다. 지명 중 매우 간략하게 기록되어 채집지에 대한 추정이 다소 어려운 경우가 있다.
Nakai의 경우는 같은 논문에서도 동일 지명을 달리 표기하는 경우가 많아 Quang Chee Pah Wee, Kai Aw Gai Pass (筐地, 광지바위)나, Kang-gei, Kangei, Kokai (江界)로 표시하는 경우가 있다. 이외에도 일부 지명은 채집동선과 날짜를 고려해서 추정한 장소는 개성지역인 Myo Daug (妙德), 경기도 연천의 Wolgok (月串) 등이 존재한다. 현재 논문에서 제시한 그림(Fig. 1)은 북한을 중심으로 채집된 지역만을 표시하였다(Appendix 2 참조).
[1909년]
5월−7월까지 평안북도 강계군에서의 표본이 있으며, 8월15일−18일은 자강도 전천, 25일은 평양에서의 채집기록이 있다. 9월 초에는 서울에서 채집된 표본이 남아있다.
[1910년]
4월에 평안남도 안주 지역 채집을 시도하였으며 부터 4−8월까지 평안북도 강계군을 중심으로 채집을 하였다. 8월 중순에는 자강도 시중동, 초산, 평안북도 벽동에서 채집을 하였다. 이후 9월 말부터 평양, 평안남도 안주시 신안과 평안북도 서동, 향산으로, 자강도인 희천과 강계로 이동하면서 채집을 하였다. 즉 8월 중순에 강계에서 이동해서 평양으로 이동한 후, 한 달 후에 강계로 돌아오는 일정의 채집으로 추정된다.
[1911년]
3월부터 8월까지 평안남도 강계에서의 표본이 남아 있다. 8월 말에는 자강도 시중동, 위원, 평안북도 창성, 삭주, 전천으로 이동한 채집 기록이 남아 있다. 9월과 10월에는 서울과 부산 채집기록이 남아 있다.
[1912년−1914년]
1912년 초에는 부산에서의 채집 기록이, 1913년 11월과 1914년에는 주로 서울(북한산)에서 채집기록이 남아있다. 7월에는 경기도 연천과 황해남도 구미포 채집기록이 있다.
[1921년]
6월 말에서 8월초까지 황해도 구미포에서 채집한 기록이 있다.
[1922년]
1921년과 유사하게 6월말에서 7월 말까지 황해도 구미포 채집이 남아 있고, 그 이후 몽금포와 개성의 묘덕의 채집 표본이 있다.
3. Furumi, Masatomi (古海正福): 1917년 4월부터 9월까지 약 5개월 동안 평안북도, 함경남도와 함경북도를 주로 조사하였으며, 그가 채집한 368개의 표본이 도쿄대학 표본관(TI)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며, 그 중에서 11개의 표본이 Nakai에 의해서 기준표본으로 지정되었다. 백두산 채집기록이 다수 남아 있어, 이 지역 초기 식생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Appendix 3 참조).
[1917년]
4월에는 신의주 근처 채집을 시도한 이후, 5월에는 양강도 남사동에서 채집을 시도하였다. 6월−7월은 함경남도 북청에서 채집 기록이 있다. 7월 초에는 양강도 갑산군의 보흥리, 여수평, 통남면을 거쳐 포태산까지 채집을 하였다. 7월 말에는 혜산진에서 백두산 지역으로 이동하여 8월 중순까지 무두봉, 무봉, 유평과 설령 채집 기록이 있다. 8월 중순에는 다시 갑산군 진천보로 돌아온 기록이 남아있다. 이후 8월말에서 9월말까지 자강도 남사동, 희천에서 채집을 시도하였다.
4. Nomura, Naohiko (野村直彦): 1926년부터 1936년까지 채집한 532개의 표본들이 교토대학(京都大學)과 일본 국립과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1926년부터 1932년에 채집된 표본은 28개로 함경남도 풍산군, 함흥시에서 채집된 것이고, 대부분의 표본은 1934년과 1935년도에 채집한 것으로 381개가 된다. 이들 표본은 대부분 함경남도 함흥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시 함흥지역을 중심으로 채집한 것이다. Numura가 채집한 표본은 대부분 초본으로 목본식물표본은 42분류군 48개에 불과하다(Appendix 4 참조).
[1933년]
6월과 7월 함흥시 반룡산에서 채집한 표본이 있으며, 8월 13−14일에는 강원도 안녕군 위익면 삼방, 9월 17일 함주군 동천면 풍서리-풍양리, 10월 16일 서호진 등대에서 채집한 표본들이 있다.
[1934년]
4월 16일부터 함흥시 반룡산, 서상리 등을 채집하고, 7월 24일−26일 동상면 함대리-부전리, 차일봉의 채집 기록이 있다. 8월 15일−17일 장진군 신각면 북산과 부감리에서 채집한 표본이 있다.
[1935]
4월 5일부터 채집한 기록이 있으며, 4월 28일에는 함주군 하산우천면-삼거의 채집기록과 6월 9일 평안남도 영원군 황초령, 7월 23일−29일 함경남도 변천보, 대한대리, 부전군 한대리, 허어수리, 동하면 운산리 등에서 채집을 하였다.
[1936년]
6월 9일 평안남도 영원군에서 채집을 하고, 10월 10일 함흥의 반룡산이 마지막 채집 기록이 된다.
5. Saito Tatsumoto ( 藤龍本): 1931년부터 1942년까지의 1730개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만, 1932년부터 1938년까지 7년 간 채집한 표본이 1,586개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Saito에 대한 기록은 Kitamura(1977)에 의해 비교적 자세하게 정리되어 있다. 1930년에 교토대학의 Ohwi와 Kitamura가 함경도 방문을 하였을 때 채집 방법을 배워 1932년부터 활발한 채집을 시작하였다. 당시 1935년 5월까지는 약사로 활동하였다.
이후에는 1939년까지는 임산과, 위생과, 상공과, 학무과에서 근무하면서 채집을 시도하였다. 1939년에서 1941년 3년 간 함경북도 임업시험장과 함경북도 산림회촉탁 겸무를 맡은 시기에 채집을 중단하였다가 1942년에 함경북도 과학교육재단과 과학박물관, 만주국 간도성, 조선군 육군창고 업무를 맡은 시기인 1년 중 여름인 7−8월에 백두산, 그리고 10월의 청진 채집 기록이 남아있다. Saito의 표본은 교토대학 표본관(KYO)에 대부분 소장되어 있다(Appendix 5 참조).
[1931년]
6월 함경북도 청진군 나남과 8월 경성군의 관모봉에서의 기록이 있지만 표본수는 10여 개의 극소량이다.
[1932년]
본격적으로 채집을 시작한 해로서 5월부터 표본 채집을 시도하였다. 주로 함경북도 청진군 나남지역을 채집하였다. 함경북도 경성 부근의 지역인 남하석산, 관모봉, 나남과 청진 지역인 도정산 지역에서의 채집기록이 남아있다.
[1933년]
4−6월 사이에 대부분 나남 지역에서 채집된 기록들이며, 7월 말에 관모봉, 백두산에서 채집기록이 있다. 9월에 다시 관모봉 채집을 시도하였다.
[1934년]
5−8월까지 주로 나남 지역 채집이 간헐적으로 되어 있지만, 5월 29일에서 6월 5일까지 주을, 관모봉 조사가 있다.
[1935년]
3−9월까지 주로 나남과 경성 주변의 채집 기록이 남아 있다.
[1936년]
6월 5−16일 사이에 관모봉, 7월 초에 경성군 지역 조사와 8월에는 무산과 부령 지역 조사를 시도해서 나남 지역 조사 이외에 보다 함경북도 많은 지역 조사를 시도하였다.
[1937년]
5월부터 성진(김책), 서수라, 라진, 백암 지역, 온성 지역을 채집하였다.
[1938년]
함경북도의 북쪽인 무산-행영, 증산과 송진산 등을 5월 말과 6월 중순에서 7월 중순에 시도하였고, 10월에는 명천 지역 조사를 실시하였다. 이 해는 나남보다는 다른 지역 조사를 시도한 해였다.
[1942년]
3년 간(39년−41년) 채집기록이 없다가, 42년에 7월 20일에서 8월 2일까지 백두산 채집기록이 있으며 10월 5−6일 사이 청진 고미산 채집이 있었다.
6. Okuyama Shunki (Syunki) (奧山春李): 31세인 1940년에 510여 개의 표본채집을 시도하였다. 강원도와 함경남도 지역을 약 10일 간 채집한 기록이다(Appendix 6 참조).
[1940년]
8월 7일−9일까지 3일 동안 강원도 금강산의 내금강 지역을 주로 채집한 후 11일에 함경남도 함흥 채집이 있다. 8월 14일−16일까지 3일간 부전고원 한대리, 운수령 지역, 차일봉 지역 채집을 시도하였다. 이후 8월 17일에 함흥 서호진의 채집 기록이 남아 있다.
전체 6명의 채집 표본수는 약 4,700여개로 Nakai의 14,000여개 기록, Komarov의 7,000여개, Ohwi의 4,300여개, Faurie와 Taquet의 9,000개의 채집품에 비해서는 비교적 적은 채집기록이지만, 황해남북도, 평안남북도, 양강도와 자강도, 함경남북도에 걸친 북한의 채집기록이 많지 않은 지역의 채집으로서 매우 중요한 분류학적 사적 기록이 된다.
Nakai 문헌에 인용된 표본은 R.G. Mills, H. Imai, M. Furumi로서 해당되는 지명에 대해서는 Table 1에 제시하였다. Saito의 표본은 주로 Ohwi의 문헌에 언급되었다. 반면, S. Okuyama, N. Nomura의 표본은 양이 적어 문헌에 인용된 빈도는 매우 낮다. Mills, Imai, Furumi는 주로 도쿄대학(TI)에 소장되어 있으며, Nomura와 Saito는 교토대학(KYO)에, Okuyama는 국립과학박물관(TNS)에 소장되어 있다.
기준표본으로 인용된 빈도는 Imai가 35개, Furumi가 19개, Mills가 15개, 그리고 Saito는 7개로 전체 76개로서 전체 기준표본 정리의 약 2% 정도가 된다.
Acknowledgements
본 연구는 산림청 ‘산림과학기술개발사업(과제번호: S121212L020100, 세부과제번호: S121212L020110)’ 2014−2015년 북한생물다양성(식물) DB 구축의 종발생자료 지역 정리 부분에 대한 결과물이다.
References
Appendices
Appendix
Appendix 1. Imai, H.’s itinerary from 1909 to 1912 in P’yongan-namdo and P’yongan-bukto including P’yongyang of North Korea(DPRK).
Appendix 2. Mills, R. G.’s itinerary from 1909 to 1912 in P’yongan-namdo and P’yongan-bukto including P’yongyang of North Korea(DPRK).
Appendix 3. Furumi, M.’s itinerary for the 1917 from Sinuiju to Hamgyong-namdo of North Korea(DPRK).
Appendix 4. Nomura’s itinerary from 1930 to 1936 in Hamgyong-namdo of North Korea(DPRK).
Appendix 5. Saito, T.’s itinerary from 1929 to 1942 in Hamgyong-bukto and Ryanggang of North Korea(DPRK).
Appendix 6. Okuyama, S.’s itinerary for the 1940 in Hamgyong-namdo of North Korea(DPRK).
kjpt-46-1-65-app1.pdf